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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잊혀진 질문 이병철 회장의 24질문과 차동엽 신부의 생각

by &38^^@& 2022. 3. 18.

오래전 '잊혀진 질문'이란 이름의 고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24가지 질문에 대한 24년이 지난 차동엽 신부의 생각입니다. 이런 질문을 한 이 회장님의 생각도 참 특별하고 이 질문에 대한 차동엽 신부님의 답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인간과 신, 종교에 관한 24가지 질문지를 박희봉 신부에게 전했습니다. 이후 24년이 지난 시점에 보관되어온 질문지에 대해 차동엽 신부가 답변을 하며 '잊힌 질문'이란 제명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해 2011년 차동엽 신부의 답변입니다. 신과 신앙에 대한 질문인데 24가지 질문이 전체인지 아니면 다른 질문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차동엽 신부의 답변

신부님의 답변에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자유의지!

신부님의 생각에 자유가 있듯, 생각이 다름에 또 다른 자유도 있습니다. 그래서 답이라는 말보다 생각이란 말을 쓰고 싶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건 이렇습니다."라고.

 

 

1. 신(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개미와 코끼리를 보라. 개미는 이차원적인 존재다. 작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겐 평면만 존재한다. 입체도 개미에겐 평면이 된다. 그런 개미가 코끼리 몸을 기어 다닌다. 개미는 코끼리 몸을 느낀다. 그러나 코끼리의 실체를 파악하진 못한다. 왜 그런가. 개미의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코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개미는 코끼리를 모르는 건가. 아니다. 개미는 코끼리를 느낀다. 코끼리의 부위에 따라 다른 질감을 느낀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인간도 그렇게 신을 느낀다. 우리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신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 물리학에선 우주의 차원을 11차원이라고 한다. 3차원적 존재가 11차원적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나. 흑백 TV로 3D 컬러 영상물을 수신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고 돼 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그리스어로 말씀은 로고스 (Logos)다. 로고스의 뜻이 뭔가. '원리'다. 다시 말해 존재 원리를 뜻한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의 첫 구절은 "태초에 존재 원리가 있었다"가 된다. 우주에는 기가 막히게 섬세한 질서가 있다. 결국 그러한 존재 원리, 그리도 섬세한 질서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거다."

 

그 근원은 뭔가.

"만물의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신을 만날 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그럼 신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가톨릭 신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은사 신부님을 통해 고(故) 최민순(1912-75) 신부님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최 신부님은 아침 수업에서 이런 시상(詩想)을 내놓았다고 한다.

 

꽃을 본다
꽃의 아름다움을 본다
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제겐 충격이었다." 

"우주의 철리(哲理)가 사통팔달로 뚫리는 기분이었다. 꽃의 아름다움, 나무의 아름다움, 땅의 아름다움, 하늘의 아름다움이 모두 하느님의 고백이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결국 한 송이 꽃을 통해서도 신을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이 자신 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거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하느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 방식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 거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의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 계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건 단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지구의 환경, 우주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끝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한된 개념일 뿐이다."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의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과학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날까.

1916년 미국 과학자 중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라고 답했다. 당시 조사를 했던 제임스 류바는 미래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었다.

 

1997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결과 81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미국 과학자의 40%가 여전히 유신론 자라고 나왔다. 그 81년간 과학 발전의 총량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 대립적 관계가 아닌가.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던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이 피어난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 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 의지가 있다.

 

그럼 고통은 언제 오나.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괘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의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괘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이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괘도를 찾기 위한 신호이다.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 뭔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 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 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이기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괄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벼락이나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는다. 마취 직전, 수술대 위에 누운 이들도 기도를 한다. 무신론자도 슬픔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무한을 동경한다. 영원을 갈망한다. 그런 염원이 하나의 현식이 됐을 때 종교가 된다.

 

종교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은 영원을 찾다가 자꾸 벽에 부딪힌다. 부딪힐수록 무한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결국 동경하던 무한성에 신이란 이름을 붙인 거다. 그 무한성을 인격체로 여긴 사람들이 그걸 숭배하게 되고 도움받기를 청하는 거다. 자신이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으니까. 결국 인간은 종교라는 터널을 통해 영원을 갈망하는 거다.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리스 철학은 유신론이 아니라 자연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세 가지 혼이 있다고 한다.

 

生魂(생혼)과 覺魂 (각혼), 그리고 영혼이다.

모든 생활의 중심에 생혼이 있다고 한다. 나무나 풀에도 생혼이 있다. 나무의 수명이 다하면 생혼도 죽는다.

다음은 각혼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는 동물에겐 생혼과 각혼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겐 생혼과 각혼에다 영혼까지 있는 거다. 물질계를 초월하는 생명현상, 그게 영혼이라는 거다. 영혼이 제대로 작동할 때 우리는 본래의 인간에 더 가까워진다.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계시 종교와 자연 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계시 종교이다. 힌두교와 불교는 자연 종교에 속한다.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 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다 바뀌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공부해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에 입장이 바뀌었다.

 

타 종교의 구원 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이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65년 이전에는 개신교도 다른 종교와 구분 없이 남으로 봤다. 그런데 65년 이후에는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 하나?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바뀌었다.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인 신념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미리 고백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임종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나의 여행 채비는 다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돌아가셨다" 고 표현한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갔다는 뜻이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강한 증거가 있나?

12 사도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 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 이걸 증거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 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개그프로를 보면 '이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불공정한 사회라는 거다.

악인이 버젓이 잘 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부조리 현장에서 신이 침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공정 사회를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탐욕이다. 한국이 불공정 사회라면 그걸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주체는 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말했듯이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 기회를 주는 거다. 죽기 전에 악인이 회개할 수 있고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신의 자비를 본다. 벌은 사후 또는 종말 때 주어진다.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 임의 메시지다.

부자에도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이웃과 잘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국에 가지 않겠나. 주위를 보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이 없고 100% 악인도 없다. 부자도 늘 그런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 있고 악인이 될 수 있다.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 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이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살아보면 상당히 질서가 있다. 물론 마피아가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범죄 집단일 뿐이다. 이탈리아 국민의 평균적 윤리의식, 그들의 기준은 엄정한 편이다.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이 질문에 100% 동의한다.

다를 바가 없다. 똑같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신앙이 가능하다.

이 셋 중 하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몽상가나 다혈질 행동파가 될 수 있다. 주로 "오직"을 강조하는 사람이 광신도가 될 소지가 많다.

 

오직 믿음, 오직 실천, 오직 성장, 오직 복지, 오직 우(右), 오직 좌(左), 오직 사랑, 오직 정의도 다 위험한 것이다. 종교든 이념이든 보편성을 잃을 때 미치게 되는 거다.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 폴란드 등 공구 제국, 니카라과 등.)

 

공산주의는 천주교 신자가 택한 것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이탈한 무신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거다. 공산권에서 종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협력 관계나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적 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통계청 조사를 보면 종교인의 범죄 비율보다 비종교인의 범죄 비율이 더 높다. 그나마 종교인이 범죄 수치를 낮춘 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시사하는 바를 깊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이 더 사회정화 기능을 하지 못하고 더 성숙하게 살지 못하고 좀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형식만 그리스도인이지, 내용은 안 바뀐 경우도 많았다. 빛과 소금 역할,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21.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교황의 무오 류권(무류권)을 말한다. 가톨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무오 류권은 교황좌에서 특별한 교리, 엄중한 진리의 문제에 관해 천명할 때 무 오류권을 발동한다.

 

주로 기준이 애매할 때 이 기준을 따르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발동된다. 그러나 무 오류권이 발동된 사안도 시간이 지나면 수정될 수 있다. '타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무 오류권이 발동된 사안인데 결국 수정했다.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신부는 예수님을 대리해 양 떼를 돌보는 사람이다.

1965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양 떼였다. 65년 이후에는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양 떼다. 수도원 소속인 수녀와 수사는 다 수도사다. 그들은 전적으로 투신해 영혼의 갈무리를 하는 사람이다.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나는 여기에만 헌신합니다"라는 서원이다. 기혼과 독신이 섞어 있다가 13세기부터 사제는 독신이 됐다. 수도사는 그 이전부터 독신 수도 생활을 했다.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 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다. 그건 개별적인 사안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종말은 어전일까. 내가 죽는 말이 종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오메가 포인트 (종말의 시점)가 있을 거다. 지구의 수명이 다 하는 날이 올 테니까.

 

성경에는 종말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보는 시각이 좀 다른다. 파국만은 아니다. 구원을 위한 최종 추수의 시간으로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린다. 종말을 기대하는 사람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 신앙인의 특권은 종말을 희망 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종교는 결국 종말 너머를 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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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잊혀진 질문이란 이름의 이병철 회장의 24질 문과 차동엽 신부의 생각에 대한 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 답변들이 있었고 그 대답을 듣는 자체가 큰 기쁨이 됩니다. 모든 대답에 같은 생각인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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